한인 정치력은 이제 '몇 명이 당선됐는가'를 넘어, 당선이라는 성과를 어떻게 한인 커뮤니티의 실질적인 힘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연방 및 주·지방정부에서 한인 선출직 공직자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개별 정치인의 성공을 한인사회의 지속 가능한 영향력으로 연결하는 체계적인 구조가 앞으로의 과제다.
본지는 현직 한인 정치인들에게 한인 정치력의 현주소와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이 제시한 해법은 '참여'와 '조직화'로 요약된다. 선거철 일회성 결집에 그치지 않고 정치 과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차세대 정치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때 한인 정치력 역시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제언이다.
"한인의 힘 과소평가 말아야"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
한인 정치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인은 미국 정치 지도자로 나서기 어렵다’는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한인 연방 상원의원인 앤디 김 의원은 자신도 선거 때마다 이런 장벽을 직접 경험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연방 하원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는 백인이 다수인 지역구라 이길 수 없다고 했고,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주 전체 선거에서 승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소수계’라는 말을 들었다”며 “아시안이 지도자로 나서기 어렵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 자신과 집단의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장벽을 넘어서는 출발점으로 ‘스스로 목소리를 찾는 것’을 꼽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목소리와 능력을 대신 규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한인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차세대가 정치와 공공 서비스에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김 의원 자신도 전국의 젊은 한인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의정 활동에 반영하는 한편, 연방 의회와 한국 정부, 미국 내 한인 디아스포라를 연결하는 역할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향후 10년을 한인이 미국 정치와 정부에서 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는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궁극적으로는 한인 지도자가 다양한 유권자를 대표하는 모습이 더 이상 특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차세대가 스스로를 미국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데까지 정치적 대표성이 확장돼야 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시각이다.
"개인의 성공, 집단적 힘으로 전환" 영 김 연방 하원의원
각 분야에서 한인 개개인이 이룬 성공을 시민 참여, 조직적 후원과 정책 연대로 연결해 ‘함께 행동하는 공동체’로 전환해야 한인사회 정치력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영 김 연방 하원의원은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개인의 성공에 비해 조직적 영향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은 크게 늘었지만, 이 같은 성취가 정치권을 움직이는 집단적 힘으로 전환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정치력 신장을 위해서는 개인적 네트워크나 특정 정치인과의 관계를 넘어 상시적인 시민·정치 참여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기본이며 선거 캠페인 참여, 선출직 공직자와의 소통, 차세대의 공직 진출 독려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한 조직적 후원과 정책 옹호 활동도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제시했다.
특히 김 의원은 한인사회가 정치권에 요구만 하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정치 과정의 한 축으로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력은 선거철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시민·정치 참여를 통해 쌓이는 것”이라며 한인사회가 평소 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한인사회의 정치적 지평이 한인 현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인 역시 더 큰 미국 사회의 일원인 만큼 모든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 필요"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
지속 성장 가능한 한인 정치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몇 선출직의 성공에 의존하기보다 차세대가 정치권에 진입해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은 한인 정치 참여와 대표성이 크게 진전됐지만, 정치권을 떠받칠 인재층은 여전히 얇다고 진단했다. 선출직뿐 아니라 고위 입법 보좌진과 캠페인 실무자, 정책 전문가 등 실제 정책과 선거 과정에 참여하는 한인이 부족해 정치적 영향력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 의원은 “입법 보좌진, 캠페인 매니저, 조직가, 정책 전문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변호사, 커미셔너 등 정부와 시민사회 곳곳에 한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출직 숫자뿐 아니라 정치 시스템을 움직이는 다양한 영역에 한인 인재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차세대 육성을 일부 정치인의 개인적인 소개나 지원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정부를 경험하게 하고 멘토십과 펠로십을 제공한 뒤, 젊은 인재를 경험이 풍부한 정치권 인사와 연결해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의원은 성공적인 인재 육성에 대해 “공공서비스에 관심 있는 젊은 한인이 앞으로 나아갈 명확한 길을 볼 수 있고, 그 길을 함께 걸어줄 공동체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인 정치력의 지속 가능성은 정치인을 한 명씩 배출하는 것을 넘어 다음 인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진단이다.
"정치에 눈 돌릴 기회 많이 만들자" 최석호 가주 상원의원
차세대 한인 정치인은 누군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자신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자라기 시작한다.
최석호 가주 상원의원은 정치 진출의 출발점은 결국 개인의 관심과 의지라고 봤다. 다만 그 관심이 실제 도전으로 이어지려면 주변의 권유와 정치 현장을 직접 접하는 경험,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대화 같은 외부 자극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차세대 정치인 육성을 특정 인물을 발굴해 키우는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치에 눈을 돌릴 기회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특히 어린 시절 공공 영역을 직접 접하는 경험에 주목했다. 주청사를 견학한 학생들이 의원을 만나 대화하고 의정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공직을 자신의 미래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부모가 가정에서 사회 문제와 정치 현안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자녀가 공공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최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는 경로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주변 인사들의 지속적인 출마 권유를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정치 현장에서 경험을 축적하며 진로를 정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변의 권유를 통해 뒤늦게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의원은 차세대가 정치와 공직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꾸준히 만들어야 공직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인재층이 두터워지고, 장기적으로 한인 정치력의 저변도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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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모아 시의회·교육위부터 정치 저변 확대
"정치에 참여하는 대중의 폭 넓혀야" 존 이 LA시의원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얼마나 많은 한인이 정치가 자신의 일상을 바꾸는 과정임을 인식하고 참여하느냐에 달렸다.
존 이 LA시의원은 가장 큰 과제로 정치와 일상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 확대를 꼽았다. 그는 “정부의 결정은 우리의 비즈니스와 학교, 지역사회, 치안,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정치적 영향력이 결국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 부족이 실제 참여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인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현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행동할 때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인사회의 존재감도 강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 참여의 저변을 넓히려면 차세대가 일찍부터 공공 영역을 경험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이 의원실은 ‘LEE12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지방정부 행정과 공공 서비스, 정치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청소년이 공직과 시민 참여를 자신의 향후 진로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결국 정치인 배출에 앞서 정치에 참여하는 대중의 폭을 넓히자는 해법이다. 기성세대가 지역 현안과 정책 결정에 적극적 관여하고, 차세대가 자연스럽게 공공 서비스를 경험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때 한인 정치력 역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힘이 된다는 진단이다.
"한인 정치, 현재에 안주해선 안 돼" 프레드 정 풀러턴 시장
지속적인 성장 가도를 달리기 위해선 지금의 성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한인 정치력이 그렇다.
프레드 정 풀러턴 시장은 특히 한인 인구가 밀집한 남가주에서 한인 선출직이 줄어드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단순히 후보를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선시킬 수 있는 정치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인 정치 대표성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대 한인 밀집 지역인 LA와 오렌지카운티에서 주요 한인 선출직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 시장은 한인 후보가 선거에 나서는 것보다 실제 당선으로 연결하는 공동체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많은 한인이 출마하지만 실제로 승리하는 후보는 많지 않다”며 “한인사회가 경쟁력 있는 후보를 제대로 가려내고 당선까지 힘을 모아 지원하는 일을 훨씬 더 잘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10년의 정치력 역시 한인사회가 얼마나 결집하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그는 유대계와 베트남계 커뮤니티처럼 투표와 후원, 후보 지원 과정에서 힘을 모은다면 한인 선출직과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자질보다 연고에 기대 후보를 지지하거나 정당 논쟁에 매몰될 경우 오히려 정치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요한 건 출마자 수가 아니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별해 투표와 후원을 집중한 뒤 실제 당선으로 연결하는 조직적 공동체로 결집할 수 있느냐가 다음 단계의 정치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로컬 정치인 배출이 정치력 토대"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시의원
연방·주정부뿐 아니라 주민의 일상과 가장 가깝고 생활과 직결된 정책이 결정되는 지방정부에서 더 많은 한인 정치인이 배출돼야 정치 참여의 기반도 함께 두꺼워질 수 있다.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시의원은 각급 정부에서 한인 정치인의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특히 로컬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시의회와 교육위원회 등은 치안과 주거, 교육, 지역개발처럼 주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다루는 만큼 이 단계에서 한인 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 정치력의 토대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축적된 영향력이 한인만을 위한 목소리에 머물지 않고 다른 소수계의 권익과 형평성까지 대변하는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 한인사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미국 사회에서도 주요 정치·시민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도 적지 않다. 안 의원은 정치적 무관심과 언어 장벽이 참여를 제약해 왔으며,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인들의 정치참여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치 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와 교육을 확대하고, 유권자 등록과 지방선거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사회 내부의 분열도 해소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세대와 경제적 배경, 정당 성향에 따른 차이가 공동의 목소리를 약화해 왔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차세대의 미래를 위해 공동의 정치 목표를 만들고, 다른 소수계 커뮤니티와도 연대해야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내부 결집에서 이제는 외연 넓힐 때" 이은주 라구나우즈 부시장
다양한 인종 커뮤니티와 연대하며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정치인을 키워야 비로소 한인 정치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은주 라구나우즈 부시장은 향후 10년간 한인 정치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직 진출과 선거 출마가 늘고 있고, 언어와 문화적 장벽도 이전 세대보다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리더 역할을 맡는 데도 한층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이런 잠재력을 실질적인 정치력으로 연결하려면 한인사회 내부의 결집을 넘어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력은 참여와 조직화, 연대 구축, 투표에서 나온다”며 “개인과 단체 간 차이를 넘어 함께 움직이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짚었다. 동시에 다른 인종·커뮤니티와 공통 현안을 찾아 협력하고 지지 기반을 넓혀야 한인사회만의 대표가 아닌 폭넓은 유권자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시장이 그리는 10년 뒤 한인사회는 단순히 성공한 이민자 집단에 머물지 않는다. 지방정부부터 주·연방정부까지 다양한 지도자를 배출하고, 교육,경제,치안,주거 등 미국 사회의 현안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공동체다.
궁극적으로 이 부시장은 한인 정치력의 목표가 ‘한인을 위한 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커뮤니티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전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정치인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인 정치력도 미국 정치의 주류에서 지속 가능한 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